KOREAN WAR
한국전쟁
한국전쟁 소개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경 38선 여러 지역에서 북한 인민군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
전쟁개시 4일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3개월만에 대구·부산 등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북한군에 장악되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압록강 부근까지 진출하였지만 다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재역전 38도선 부근에서 밀고밀리는 긴 공방전이 벌어지게 된다.
소련측의 휴전제의와 미국의 수용으로 휴전협정이 조인되고 남북한은 휴전상태로 현재까지 대치하고 있다.

3년1개월간 계속된 한국전쟁은 남북 쌍방에 약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를 냈고, 국토의 피폐화를 가져왔다. 특히 폭격으로 인한 북한지역의 피해는 극심하여, 미군지휘관이 「더 이상 목표물이 남아 있지 않다」고 공언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남북의 적대감이 극도로 심화되어 민족분단 체제가 더욱 굳어졌으며 대외적으로는 동서냉전을 격화시키는 고비가 되었다.
한국전쟁연혁

발생시기

주요사건

1949년

북한, 소련과 '조소군사비밀협정' 체결.

남한에서 주한미군철수.

1950년

미국, 애치슨라인 발표.

1950년 6월 23일

국군, 비상경계령 해제. 병력의 1/3 이상이 외출.

1950년 6월 25일

북한, 38선 전역에 걸친 국군 방어진지 기습공격 개시. YAK전투기 서울 상공에 침입.

미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즉시 소집 요구.

미국 결의안 채택(소련 결석)해 북한군 철수 요구.

1950년 6월 27일

안전보장이사회

유엔 회원국에 대한민국 원조를 권고하는 결의 채택.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1950년 10월

유엔군,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

1950년 11월

중공군 개입.

1950년 12월

북한지역에서 유엔군 철수.

1951년 1월

대한민국 정부 서울에서 철수.

1951년 2월

유엔 총회, 중공군 철수 요구.

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회담 시작.

1951년 10월

회담 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김.

1952년 10월

공산측의 비타협적인 태도를 문제로 유엔군 사령부 회담 중지.

1953년 7월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 휴전이 조인.

전쟁당시 남북군사력 비교

구분

부대/병력

주요장비

남한

북한

남한

북한

지상군

보병 : 8개사단

해병 : 1개부대

기타지원부대 등

9만6,140명

보병 : 10개사단

전차 : 1개여단

기타기계화부대, 경비대, 특수부대 등 19만 1,680명

곡사포 : 91문

대전차포 : 140문

박격포 : 960문

장갑차 : 27대

곡사포 : 552문

대전차포 : 550문

박격포 : 1,728문

장갑차 : 54대

전차 : 242대

해군

6,956명

4,700명

경비함 : 28척

기타함정 : 5척

경비함 : 30척

보조함 : 80척

공군

1,897명

2,000명

연습/연락기 : 22대

전투기/전폭기/기타 : 211대

10만5,752명

19만8,380명

 

 

남북 민간인 피해현황

남한

북한

소계

사망

학살

부상

납치

행불

2,490,968

990,968

244,663

128,936

229,625

84,532

303,212

1,500,000